고려대학교 사범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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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몽유도원도 夢遊桃源圖

 

비단에 먹과 채색

106.5 x 38.7cm

1447년(세종 29)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중앙도서관 소장

 

Ⅰ.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

   안평대군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이용이고, 자는 청지(淸之), 호는 비해당(匪懈堂) 또는 매죽헌(梅竹軒)이다. 세종은 ‘안평(安平)’이라는 이름이 ‘편안하고 무사하다’는 뜻으로 너무나 안이한 점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비해당(匪懈堂)’이라는 호를 특별히 하사하였다고 한다. 안평대군은 이렇듯 세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았는데, 어려서부터 학문과 예술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특히 가장 출중한 능력을 보인 분야는 서예였다. 나라 활자인 경오자(庚午字)의 원본 글씨를 쓰기도 하였으며, 고려 말부터 유행한 송설체(松雪體)에 특히 뛰어나 중국 황제에게까지 알려져 황제가 중국 사신을 통해 안평대군의 글씨를 얻어가고 싶다고 요청할 정도였다.

<그림 1. 몽유도원도 안평대군 시문>

 

   안평대군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이다. 이 그림은 1447년(세종 29)에 안평대군이 도원에서 노닌 꿈을 안견에게 말해 그려진 작품이다. 안평대군의 설명을 들은 안견은 사흘 만에 그림을 완성했고, 그 그림에 안평대군은 발문을 적었다. 안평대군은 자신이 꾼 꿈과 안견의 몽유도원도 그림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서 작품의 제작 연유를 적은 장문의 글 ‘제기(題記)’를 손수 적은 것은 물론이고, 큼직한 제목 글씨까지 멋들어지게 써서 첫머리에 붙였다. 또 당시 명사 21명에게 부탁하여 이를 기리는 찬시와 찬문을 받았다. 박팽년의 ‘몽도원서(夢桃源序)’를 비롯하여 성삼문, 박팽년, 신숙주, 박연, 김종서, 서거정, 정인지 등 당대 문장가들의 필적과 문장은 총 20미터에 이른다. 안평대군은 3년 후 어느 날 다시 옛 감회에 젖어 다시 제시(題詩)를 지어 덧붙였다.

   몽유도원도는 이처럼 안평대군의 제목 글씨와 ‘제시’가 그림의 앞을 장식하고, ‘제기’가 뒤를 잇고 있다. 당대를 대표하던 천하 명필 안평대군의 글씨와 안견의 그림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이루어내고 있으며, 더욱이 한 시대를 주름잡던 명사들이 각기 글씨와 문장을 드날리고 있으니, 한 점의 작품으로 이처럼 한 시대의 문화를 대변하는 예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보아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Ⅱ. 안견의 생애와 화풍

   안견은 조선 초 세종부터 세조 때까지 활동한 화가로 알려졌으나, 그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안견이 세종 때 도화원 종6품인 선화(善畫)에서 정4품 호군(護軍)으로 급격하게 승진한 것을 보면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났고, 또 세종이 그를 얼마나 총애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안견이 일했던 도화원은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견평방(지금의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세종 때는 최고 5품까지 오를 수 있는 관청이었으나, 성종 대에 도화서로 이름이 바뀌고 부서가 격하되면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화원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직은 종 6품 별제(別提)까지였다. 화원이 오를 수 있는 벼슬자리에 한계가 있다 보니 자연히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신분적으로 양반보다 낮은 사람이거나 혹은 이에 종사하면서 신분이 낮아지거나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안견의 경우도 세종의 총애로 화원이 오를 수 있는 관직 이상을 받았지만, 신분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안견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그림은 여럿이 있지만 안견이 그렸다고 확실시되는 그림으로 전해지는 것은 ‘몽유도원도’가 유일하다. 안견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그를 따르는 화가들이 많아서 조선 후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안견의 화풍을 따르는 화가로는 양팽손, 신사임당, 김시, 이정근 등이 있다. 이들 안견파의 특징은 산을 크고 웅장하게 표현하고, 인물이나 동물을 작게 그리고 자연의 묘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붓놀림에 있어서도 필체가 드러나는 것을 감추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 그림들은 대부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중국의 산수를 상상하여 그리는 상상도가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의 등장 때까지 이어졌다.

 

Ⅲ. 꿈에 본 이상향. 몽유도원도

<그림 2. 몽유도원도 부분. 복숭아밭이 도원의 세계를 의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반포한 그 이듬해 1447년 4월의 어느 날 밤. 안평대군은 꿈에서 집현전 학사 중 한 사람이자 평소 자신과 절친하게 지내던 박팽년과 함께 어느 산에 가게 된다. 깊은 골짜기를 품은 산이 겹겹이 우뚝 솟아 도저히 그 깊이나 너비,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좀 더 가까이 가보니 나무라고는 오로지 복숭아나무뿐이었다. 꿈에서 산길을 헤매던 두 사람 앞에 갑자기 복숭아꽃이 만발한 평야가 나타났다. 안평대군은 이곳이야말로 말로만 듣던 무릉도원이란 말인가 감탄하며 말을 마친다.

   꿈에서 깨어난 안평대군은 꿈속에서 본 장면이 너무나 선명하게 떠올라 이것을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견을 부른다. 그를 불러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주고 이를 그려오게 했더니 안견은 사흘 만에 그림을 완성해 바쳤다.

   몽유도원도는 오른쪽 한 부분만 제외하면 화폭을 채우는 것은 우뚝 솟은 층층의 봉우리가 대부분이다. 봉우리마다 윗부분이 짙은 먹색이라 더욱 그 험준함이 강조되고 있는 듯하다. 왼쪽 끝 부분에는 흔히 풍경화에서 볼 수 있는 낮은 산과 물이 있다. 그렇다면 왼쪽 가장자리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속세이고 그 옆 산봉우리 우뚝 솟은 부분부터는 평범한 세계와 다른 특별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특별한 공간 깊숙한 곳에 도원이 있다.

   안평대군이 꿈꾸고 안견이 표현한 이 도원이라는 공간을 정리해보자면 수십 그루의 복숭아나무가 있는 고요하고도 깨끗한 공간이다. 이곳은 속세와는 단절된 깊은 산 속에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엿보지도 가보지도 못할 곳이다. 세속의 때나 강압적인 그 무엇도 들어 있지 않은 고즈넉한 공간이다. 세상과 떨어져 고요한 자연과 하나가 될 때 그 곳은 꿈에도 그리는 참 이상세계가 될 수 있다.

 

 

- 몽유도원도 찬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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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平大君 筆 「序詩」

世間何處夢桃源, 野服山冠尙宛然.

著畫看來定好事, 自多千載擬相傳.

後三年正月一夜, 在致知亭因披閱有作.

淸之.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은자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을시고,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봄 직하지 않은가.

삼년 뒤 정월 초하룻날 밤,

치지정(致知亭)에서 다시 이를 펼쳐 보고서 짓노라.

청지(淸之. 안평대군의 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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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源入夢魂, 夢魂歸桃源.

神變互無端, 孰能知化元.

尼父繼周公, 足躡天地根.

前後同一揆, 夢見何頻繁.

黃粱與南柯, 誕妄無足論.

達者夢神仙, 至哉爲此言.

子晋多道氣, 早歲厭塵喧.

袞袞物外念, 富貴如浮雲.

도원이 꿈속에 영혼으로 들어오고, 꿈속에 영혼이 도원으로 돌아갔네.

정신의 변화는 서로 실마리조차 없으니, 누가 조화의 본원을 알 수 있으리.

공자께서 주공을 이으시어, 천지의 근원을 따라 밟으셨나니.

앞뒤의 성인이 헤아림을 함께 하여, 얼마나 빈번히 꿈에 뵈었던가!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영화는 허황되고 망령되어 말할 바도 못 되는 것.

달인이 신선을 꿈꾼다 하였거니, 이 말 참으로 옳도다!

왕자 진(晋)이 본디 도의 기가 많아, 일찍부터 속세의 시끄러움을 싫어하였다네.

줄곧 속세 밖의 세상 그리워하였고, 부귀영화를 뜬 구름 같이 여기었네.

慢漫武陵路, 杳杳秦乾坤.

偶與幽夢會, 搜索恣騰騫.

覺來命工畵, 萬象得全渾.

千古避世地, 一夕移高軒.

瓊琚暎詞林, 日月光吐呑.

披圖且讀記, 樂以窮朝昏.

人生匪金石, 百歲如電奔.

安得拔仙桃, 移種紫薇垣.

叱彼三偸兒, 萬歲奉吾君.

節齋 金宗瑞

무릉에 이르는 길 끝이 없고, 진(秦)나라 시절 아득하기만 하네.

우연히도 그윽히 꿈속에서 만나, 마음껏 올라가서 샅샅이 찾았네.

깨어나서 화공에게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니, 온갖 형상이 완연하게 어우러졌네.

천고의 옛날부터 속세를 피하여 오던 땅이, 하루 저녁에 높은 집으로 옮겨졌네.

시단의 뛰어난 인물들 주억 같은 글을 곁들이니, 해와 달의 빛처럼 눈부시게 빛나네.

그림을 펼치고 문장을 읽어보니, 하루해가 다하도록 즐겁기 그지없네.

인생은 쇠나 돌처럼 오래 가지 못하며, 백년 세월도 번개처럼 지나네.

신선 땅 복숭아나무 어떻게 뽑아다가 궁궐 안에 옮겨 심을 수 있을까?

저 삼투아(삼천갑자 동방삭)를 재촉하여 만년토록 우리 님 받들었으면.

절재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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桃源縹渺隔東韓, 梅竹何從驀地看.

忘我天遊酣一枕, 馳神雲臥任三竿.

高懷杳杳耽奇勝, 逸思飄飄跨汗漫.

却向武陵聊旅浪, 且携詞客共躋攀.

地靈豈自嫌幽討, 造物應爲好戲謾.

入洞茫然迷磴徑, 穿林儵爾遇山冠.

行通小有乾坤濶, 坐覺無何日月閒.

아득한 도원이 우리나라와는 멀고멀거늘, 매화와 대나무가 어찌 갑자기 보았는가.

베개 맡 단꿈 속에 나를 잊고 하늘에서 노닐었고, 날이 밝아 해가 높이 오르도록 훨훨 자유롭게 돌아다녔네.

높은 회포 아득히 신기한 경치 찾아 가고, 자유로운 생각 너울너울 우주를 휘돌았네.

그러다가 무릉으로 가서 잠시 방랑하면서, 몇몇 문장가들과 함께 올라갔네.

산신령이 어찌 외부인 찾아옴을 마다하였으랴, 조물주가 워낙 장난을 즐겼던 것.

동네 어귀에서 망연히 돌길에 헤매다가, 숲을 지나 우연히 신선을 만났네.

조금 가니 천지가 새로 활짝 열리는데, 들어서자 곧 세월이 한가함을 느꼈네.

百轉丹崖屛掩暎, 千盤碧磵玉琮潺.

高低竹塢靄交密, 近遠桃林霞亂攅.

柴戶半關依古樹, 漁舟一葉漾前灣.

雲扃何代開蒼巘, 月樹誰家劚翠巒.

馬渡從敎時屢變, 蛇分寧覺世多艱.

爛柯事徃空回眼, 鑿谷吟餘偶解顔.

凡骨不宜尋玉扃, 孱蹤亦預逐金鞍.

淸游枉殿珠千履, 輪擧那憑煉九還.

誰科是身會蝶化, 相誇此處信僊寰.

백 굽이 붉은 벼랑은 병풍을 둘러친 듯, 천 굽이 푸른 시내는 옥이 쟁강 울리는 듯.

낮은 대밭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멀고 가까이 복숭아나무 숲에는 붉은 노을이 꽉 찼네.

사립문 반쯤 닫은 채 늙은 나무에 의지했고, 한 잎으로 된 고기잡이배가 앞 물굽이에 띄워 있네.

구름 속 집은 어느 시절에 푸른 벼랑에 지었으며, 달맞이하는 다락은 뉘 집에서 푸른 봉우리 깎아 내었나.

말이 강을 건너 세상이 변하건 말건, 뱀이 토막난들 험난한 세상 아랑곳할 것인가.

도끼 자루 썩힌 것은 옛 일인데 공연히 눈 돌리고, 골짜기 뚫는단 시 있으니 우연히 웃어보네.

평범한 인간으로서 신선세계 찾기 부당하나, 조그만 내 몸도 황금 안장을 따라 갔네.

천 구슬 신 신으신 분들 뒤에 따라 풍취 있는 놀이를 함께 하니,

오래도록 달인 약이 없더라도 신선처럼 날았다네.

이 몸이 나비된 줄 뉘라서 알았으리, 이곳이 정녕 선계라고 서로들 놀라워하였네.

恍騎白鶴同登嶺, 休羡靑牛獨度關.

纔覺飜疑見蕉鹿, 續殘無計藉膠鸞.

靜思兀兀心猶記, 追想悠悠興未闌.

綉口便能揮玉筯, 虎頭仍遣掃霜紈.

依稀寫出丹靑裏, 彷彿徜徉紫翠間.

境與夢移隨指點, 文兼畵妙更心酸.

雨雲雙手幾飜覆, 露電一生何控搏.

擾擾宦情螳怖雀, 紛紛世態觸爭蠻.

 

可堪回首壼天路, 安得抽身陸海瀾.

하얀 학을 타고 함께 고개에 올랐던 듯, 푸른 소로 산을 지남을 부러워하지 마소.

잠에서 깨어나 꿈에서 본 사슴인가 했거니와, 끊어짐 꿈 계속 꾸자니 이어줄 풀을 얻을 길 없어라.

가만 앉아 생각하니 기억이 역력하고, 되짚어 상상하니 흥이 또한 다하지 않네.

비단 같은 입으로 훌륭한 글씨로 써 내고, 호랑이 머리가 이내 서리발 비단 위에 붓 놀렸네.

제가 본 듯 단청으로 그려낸 솜씨, 우리 모두 울긋불긋 숲속에 거니는 듯하여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듯 꿈이 실경되고, 글과 그림이 다 묘하니 마음 더욱 아리네.

세상살이 비와 구름 두 손에 엎치고 뒤치기 몇 번이며, 번개 같은 한평생 무엇으로 묶어 둘 수 있으랴.

맘 못 놓는 벼슬길은 참새 무서운 말똥굴레, 분분한 세상 꼴은 달팽이 뿔의 두 나라.

선경으로 가는 길 어찌 다시 찾을 것이며, 출렁이는 세파에서 어떻게 몸을 빼어낼까.

紫綬金草巳而殆, 淸鞋布韈果哉難.

石田茆屋幽人趣, 流水淨雲達者觀.

不是胸襟浩風月, 肯將魂夢落湖山.

芙蓉行樂渾夸語, 梅樹逍遙亦浪歡.

孰與此中高雅致, 令人長憶採芝玕.

㠉粱 崔 恒

자주색 끈 금장은 어허 참 위태한 것, 푸른 짚신, 베버선으로 은거하기도 어려운 일.

자갈 밭 초가집은 속세를 피해 조용히 사는 이의 높은 의지요, 뜬구름 흐르는 물이 얽매여 지내지 않는 이의 인생이라.

풍월 즐기는 넓은 생각이 아니라면, 꿈이 어찌 훨훨 신선이 사는 곳 호산으로 갔으리.

부용당(芙蓉堂)의 행락도 모두 자랑의 말씀, 매화 밑에 거니심도 또한 허랑한 기쁨일세.

이 중의 어느 것으로 높은 격조라 할까? 지초와 낭간의 멋을 길이 생각나게 하리.동량 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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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息盈虛一理通, 形神變化妙難窮.

膏肓不必論因想, 眞妄須明覺夢同.

萬事櫌神常役役, 只惟睡鄕可歸息.

且息若非知所歸, 誰能更入桃源谷.

烟蘿掩靄擁山根, 洞口雲霞常吐呑.

時見落花泛流水, 不知河處是桃源.

소멸하고 생장하며 차고 기우는 것 한결같은 이치인데, 형체와 정신의 변화는 기묘하여 헤아리기 어렵네.

고집스런 생각들 제멋대로 이야기할 일 아니러니, 참과 거짓 모름지기 꿈과 현실이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세상 온갖 일들 정신을 어지럽혀 항상 피곤하게 하는데, 돌아가 쉴 만한 곳은 오직 꿈나라뿐이로세.

돌아가 쉴 만한 곳을 알지 못한다면, 도원의 골짜기에 뉘라서 다시 들어갈 수 있으리?

연기자락 아련히 산기슭을 감싸고 있고, 동구 밖 어귀에는 구름 안개 항상 피어오르네.

때때로 떨어진 꽃잎 물 따라 흘러오는 것 보이지만, 도원이 어드메인지 알 길이 없네.

眞凡枘鑿不上宜, 趨向殊途合有岐.

誰傾天人勤指道, 分明一路走瑤池.

崖傾水轉瓊瑤合, 地僻山回烟霧發.

窈窕逶迤幾許深, 垂鞭直探龍蛇窟.

風磴雲門乍有無, 羊腸十里飽縈紆.

蓊翳旣盡忽開朗, 怳入三川市上壺.

茆茨土砌是誰家, 風掩柴扄半欲斜.

幽鳥數聲人不在, 落花芳草使人嗟.

진실과 범속은 마치 네모난 자루와 둥근 구멍 같아 어울릴 수 없고, 사람의 취향은 또 각기 달라 길이 갈라지기 마련.

누가 하늘에 길을 가리키게 하여, 곧장 신선이 산다는 곳에 가게 하였나?

무너져 내릴 듯한 절벽에 물줄기 굽이쳐 구슬 같은 방울이 튀고, 깊숙한 곳 산허리 휘도는 곳에 연기 같은 안개 피어나네.

아득히 뻗은 길 몇 굽이를 맴도는가? 채찍 드리우고 곧장 용과 뱀이 사는 굴을 찾아든다.

바람 스치는 절벽 위에 선계로 들어가는 구름문 있는 듯 없는 듯, 양의 창자 같은 길 십리를 꼬불꼬불 얽혔어라.

우거진 숲 끝나는 곳에서 갑자기 길이 탁 트이더니, 황홀한 경지에서 강으로 접어드니 별천지일세.

띠풀 지붕 흙섬돌은 누구의 집이런가? 사립문은 바람이 부는 대로 여닫히며 반쯤은 기울었네.

그윽한 숲 속에 새소리 들릴 뿐 사람은 없고, 떨어지는 꽃 향기로운 풀잎만이 보는 이를 감탄케 하네.

牆頭閑對數叢竹, 尤覺令人俗念絕.

白遣此君有奇姿, 萬行妖艶無顔色.

翛翛拔地璧琅玕, 落落高標不可攀.

倘試春風艶陽質, 貞姿閑倚彩雲間.

野渡孤舟自幽獨, 山靑水碧搖寒玉.

蒹葭蒲茁亂汀洲, 日夕東風吹軟綠.

飛流奮勢驚風吹, 一帶天紳萬丈垂.

濯纓濯足休相問, 洗盡紅塵世耳歸.

담장 위에 한가로운 대나무 몇 무더기, 사람으로 하여금 문득 속세 생각을 잊게 하네.

그대 그 기이한 자태 있은 뒤로, 요염 뽐내는 온갖 것들을 무색케 하네.

으쓱으쓱 아름다운 돌로 이룬 푸른 봉우리, 우뚝 솟아 사람이 올라갈 수 없네.

봄바람에 화려한 모습 자랑이나 하듯, 꼿꼿한 자태 한가로이 아롱진 구름 사이로 보이네.

들판 나루터에는 외로운 배 절로 호젓하고, 산 푸르고 물 파란 가운데 차가운 구슬 흔드는 듯.

갈대와 부들 줄기 물가에 어지러이 돋아 있는데, 해질녘 동풍이 부드러운 잎새를 스치네.

나는 듯 흐르는 거센 물줄기에 놀란 듯 바람이 불고, 파란 하늘에 한 자락 띠처럼 만 길을 드리웠네.

갓끈 빨고 발 씻은 일일랑은 묻지도 마시게, 세속의 티끌 묻은 귀마저 깨끗이 씻고나 가세.

萬樹夭桃錦繡堆, 仙風吹送綵霞來.

貌姑近日朝天去, 留取瓊葩寂寞開.

遠近交如燒暖風, 高低相暎正重重.

仙遊更値三千歲, 不是人間一樣紅.

傾劾看碁已爛柯, 眼前千歲不爲多.

穠華亦是須臾事, 報道桃花奈爾何.

世間無處索玄珠, 俛仰還嗟事已殊.

聞設武陵久零落, 更隨新夢上新圖.

만 그루 싱싱한 복숭아나무 비단에 수놓은 듯 펼쳐 있고, 신선 바람이 멀리서부터 찬란한 안개 불어 보내네.

신선이 산다는 산에 할머니 얼마 전에 하늘 위로 떠나갔고, 구슬 같은 꽃술만이 쓸쓸히 피어 있네.

멀고 가까운 곳에 따사로운 바람 서로 비껴 불며, 높고 낮은 곳이 서로 비추어 첩첩이 겹쳤어라.

신선들 이 곳에서 삼천년을 놀았다니, 인간 세상 일 년에 꽃 한 번 피는 것과는 다르다네.

잠깐 바둑 한 판 보는 사이에 도끼자루 벌써 문드러졌으니, 눈앞의 천년도 많은 것이 아니로세.

화사한 꽃 피어 있는 것도 잠깐 사이의 일, 복숭아꽃 피었다 소식 알려 어쨌다는 건가!

속세에선 검은 구슬 찾을 곳이 없으니, 고개 들고 고개 떨구며 지나간 세월 어그러진 일들을 탄식할 뿐이라네.

무릉이 쇠락한지 오래라고 들었더니, 다시금 새 꿈을 따라 새로운 그림으로 그려졌다네.

人言弱水隔塵區, 我道刀圭不外求.

患坐眞遊渾不識, 市朝何必欠丹丘.

孰覺惺惺爲彼槁, 孰夢栩栩爲此灝.

孰主張是必有然, 孰能辨之歸太昊.

月殿徒勞誇誕妄, 叢陰只得慰窮愁.

人間唯有桃源夢, 便是逍遙物外遊.

高人雅尙厭紈綺, 至性淸修好澹幽.

自多凡骨偏饒分, 得預神仙一夜遊.

雙髮蕭蕭紫陌塵, 還丹無術兩毛新.

三年一葉將安用, 洞裏桃花笑殺人.

高陽 申叔舟

사람들은 신선이 살았다는 서쪽의 강 약수가 속세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말하지만,

의술을 딴 곳에서 구할 것 없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네.

참된 경지에 노닐면서 도무지 그 뜻을 모르는 것 걱정이려니와, 저자거리에 신선이 산다는 곳 단구 없다 탓할 것이 무엇인가?

저 마른 나무처럼 또렷이 깨어 있는 이는 누구이며, 이 질펀한 물 같이 꿈속에서 훨훨 나는 이는 누구인가.

누가 이것이 반드시 그러하다고 주장하고, 누가 이를 가려 저 넓은 하늘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달나라 이야기 부질없이 허황함만 더하는 셈이고, 짙은 숲 그늘은 다만 근심 겨운 사람 마음 달래나 줄 뿐.

인간 세상에는 오로지 도화원 찾아든 꿈 꾼 것만이, 속세 밖으로 소요할 수 있는 길이라네.

지체 높으신 분 인격이 고매하여 무늬 비단을 싫어하고, 지극한 성정은 맑고 조용함을 좋아하셨다네.

평범한 세상에 사는 몸이 과분한 복을 누려, 하룻밤의 신선놀이에 함께 끼일 수가 있었다네.

양쪽 귀밑머리에 쓸쓸히 세속의 먼지 쌓였는데, 불사약 환단으로도 양쪽 머리 새로 검게 할 수는 없다네.

삼년에 한 잎 얻어 장차 어디에 쓰랴? 동굴 안의 복숭아꽃이 사람을 비웃는데.

고양 신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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夢桃源序

事有垂百代而不朽者,

苟非奇恠之迹足以動人耳目,

安能及遠傳後如是耶?

世傳桃源故事,

著諸詩文自甚多.

僕生也晚, 未得親接見聞.

惟以此導, 其湮欝久矣.

一日匪懈堂以所作

「夢遊桃源記」示僕.

事迹瓌偉, 文章幼眇,

其川原窈窕之狀,

桃源遠近之態,

與古之詩文無異.

而僕亦在從遊之列,

僕讀其記, 不覺失聲.

遽歛祍而歎之曰‥‘有是哉! 事之奇也.’

오랜시간이 지나도록 쓰러지지 않는 일이 있나니,

진실로 사람들의 이목을 움직일 만한 기괴한 자취가 아니어든

어찌 이와 같이 멀리 후세까지 전해질 수 있으리오?

도원의 옛 이야기를

시문으로 지어 전하는 것이 매우 많거니와,

나는 세상에 태어남이 늦었는지라 직접 보고 듣지 못하였으므로

신선세계로 가는 길이 영영 이대로 묻혀 버리고 마는가 싶었다네.

그러던 어느 날 비해당(안평대군의 호)이 몸소 지은

‘몽유도원기’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네.

그 행적이 진기하고 문장이 섬세한데,

깊숙한 시내와 들판의 상황

그리고 도원의 멀고 가까운 모습들이

옛날의 시문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네.

나 또한 따라 노니는 그 행렬 속에 끼어 있었던 바,

그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감탄하여 말하였다네‥ ‘이러한 일이 있었다니 참으로 기이하도다!’

東晋去今日數千載矣, 我國距武陵萬餘里矣,

在萬餘里海外之國, 得見數千載之上,

迷路之地, 乃與夫當時物色相接, 不乃爲奇恠之尤者乎!

古人有言曰‥‘神遇爲夢, 形接爲事, 晝想夜夢, 神形所遇.’

蓋形雖外與物遇, 而內無神明以主之, 則亦何有形之接也?

是知吾神不倚形而立, 不得物而存.

感而遂通, 不病而速, 有非言語形容之所及也.

庸詎以覺之所爲爲眞是, 而夢之所爲爲眞非也哉?

而況人之在世, 亦一夢中也.

亦何以古人所遇爲覺, 而今人所遇爲夢?

古人何獨檀其奇恠之迹, 而今人反不及之邪也?

동진(東晋)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이나 떨어져 있고, 무릉도원은 우리나라에서 만 리나 넘게 멀리 있는 곳.

만 리가 넘게 떨어져 있는 바다 건너 이 나라에서 수천 년 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니,

길 잃은 곳의 모습이 당시의 상황과 서로 이어져 있으니 이 어찌 더욱 기괴하지 아니한가!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정신이 만나면 꿈이 되고, 형체가 접하면 일이 된다.’고 하였으며, ‘낮에 생각한 것을 밤에 꿈으로 보니 정신과 형체의 만남이라.’ 하였네.

무릇 형체가 비록 밖으로 사물과 만난다고 할지라도, 안으로 밝은 정신으로써 주재할 수 없다면 어찌 형체가 이를 접할 수 있겠는가?

이것으로 나는 우리의 정신이 형체를 의지하지 않고서 자립하여 있고, 사물을 기다리지 않고서 존재하며,

감응하여 마침내 통하며, 갑작스럽지는 않되 빠르며, 언어로써 형용하여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겠네.

그러니 깨어 있을 때 한 바는 정말 옳고, 꿈속에서 한 바는 진실로 거짓된 것이라고 어찌 말할 수 있으리오?

하물며 사람의 세상살이 자체도 또 하나의 꿈속임에랴!

또한 어찌 옛사람이 만난 바는 실제이고 지금 사람이 만난 바는 꿈속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어찌 옛사람만 홀로 기괴한 자취를 마음대로 하고 지금 사람은 도리어 거기에 미칠 수 없다고 하겠는가?

覺夢之論, 古人所難. 僕安敢致辨於其間哉.

今讀其記, 想其事, 以尉僕平昔之懷, 是爲幸耳.

匪懈堂圖形題記, 將求咏於詞林間. 以僕在從遊之末, 命敍之.

僕不敢以文拙辭, 姑書此云.

正統十有二年後四月  日, 奉直郞, 守集賢殿校理, 知製  敎經筵副檢討官,

平陽朴彭年仁叟頓首謹序.

꿈과 깨어 있는 상태에 대한 논의는 옛 사람도 어려워한 바이거늘, 나 같은 사람이 어찌 감히 그 사이를 분별하여 따질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제 그 글을 읽고 그 행정을 생각하여 내가 평소부터 품어오던 마음을 달래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울 뿐이네.

비해당(안평대군)께서 그림을 그리게 하고 글까지 지으신데다가 문사들에게 시문으로 이를 읊도록 하셨다네. 나도 그곳 노니는 행렬 속에 끼어 있었다 하여 특별히 글을 짓도록 명하시는지라,

글 솜씨 서툴다 하여 이를 사양할 수도 없어 짐짓 이 글을 써 두는 바이네.

정통(正統) 12년(세종 26, 1477) 4월  일, 봉직랑, 수집현전교리, 지제 교경연부검토관,

평양 박팽년 인수 머리 조아려 삼가 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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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三問 筆

朝見桃源圖, 暮讀桃源記,

始信今古有桃源, 神仙之說非誕僞.

若道桃源不神仙, 世間豈無一片桃源地.

固知晋人迹未到, 想亦夢之而已矣.

不然千搜與萬索, 未必迷路不復至.

可憐千古人, 欲辨有無是與非, 枉辱仙境爲人世.

漁舟一覺後夢, 得到者無一二.

應是上界眞人愛淸淨, 十分秘不洩.

아침에 도원도를 보고, 저녁에 도원기를 읽고서,

예부터 있어 온 도원과 신선의 이야기가 거짓 아님을 알게 되었네.

만일 도원이 신선의 경지 아니라면, 이 세상에 어찌 한 자리 도원의 땅이 없겠는가.

진(晋)나라 사람도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꿈속에서나 그려 보았을 것이려니.

그렇지 않다면야 천 번 찾고 만 번을 더듬은 터에, 길을 잃고 다시 찾지 못했을 리도 없는 일.

가련하도다 예부터 수많은 사람들, 도원의 있고 없고 옳고 그름 가리려 하여, 신선세계를 인간 세상으로 더럽혀 놓았나니.

고기잡이 배 탔던 사람 꿈 깨고 나서, 그곳에 이를 수 있었던 자 다시는 없었다네.

아마도 하늘나라 님께서 맑고 깨끗함을 사랑하여, 알뜰히도 숨기고서 남에게 알리지 않았음이리.

所以至今千百禩, 僅許一入高人睡.

自非神遊八表, 神仙之境終難致.

向之陪從數子, 未知何脩而至是.

可哀人間睡方灃, 甘向紅塵萬丈墜.

賴有桃源圖, 令人醒昏醉.

賴有桃源記, 令人生道氣.

朝見圖, 暮讀記, 習習淸風生兩翅.

靑冥鶴背倘再遊, 舐鼎攀飛亦可冀.

昌寧 成三問

그러기에 지금껏 천 백년이 되도록, 단 한 번 높으신 분 꿈속에 들게 하였을 뿐.

정신이 우주 천지간에 노니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신선의 경지에 끝내 이를 수 없다네.

옛날 그를 따르던 몇몇 사람도, 어떻게 그곳에 갈 수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네.

가련하도다 인간들 잠에 골아 떨어져, 어지러운 세상 만 길 구렁텅이 속으로 굴러 떨어졌구나.

도원도가 있기에, 사람들 정신 없는 세상에서 깨어날 수가 있다네.

도원기가 있기에, 사람들 도를 닦는 기상이 생긴다네.

아침에 도원도 보고, 저녁에 도원기 읽으니, 산들산들 맑은 바람 불어 두 날개가 생기는 듯하네.

학의 등을 타면 푸른 하늘로 솟을 수도 있고, 솥 바닥 핥고서 하늘 위로 날아 오를 수도 있다네.

창녕 성삼문